사화주 사벌주 ... 신라 말로 들판은 '달' 관련 검색어 : 아사달 // 권 제8 신라본기 제8 > 신문왕(神文王) > 11년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0691년 (음))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 ( 691년 (음) ) 沙火州獻白雀. 사화주(沙火州)註 001에서 흰 참새를 바쳤다.註 002 註 001 사화주(沙火州): 사화주는 사벌주(沙伐州)를 가리키며, 오늘날의 경북 상주시에 해당한다. 신라인들은 들(드르), 즉 들판을 ᄃᆞᆯ(달 또는 돌) 또는 ᄃᆞᆨ(닥 또는 독)으로 불렀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할 때에 같은 의미를 지닌 벌이나 부리의 표현을 빌어서, 벌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伐’로, 부리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弗’로, 그 뜻, 즉 훈(訓)을 새겨 ‘火’ 또는 ‘喙’로 각각 표기하였다(전덕재, 2009, 『신라 왕경의 역사』, 새문사, 54~55쪽). 오늘날 대구광역시 중구에 해당하는 달구벌(達句伐)을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불(達弗) 혹은 달벌(達伐)로 표기하였고, 오늘날 경남 창녕에 해당하는 비사벌(比斯伐)을 비자화(比自火)라고 표기하였던 것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제2 후백제 견훤조에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광계(光啓) 연간에 사불성(沙弗城) 지금〔고려〕의 상주(尙州)에 웅거(雄據)하여 스스로 장군(將軍)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하는데, 이것을 통해 사벌주 또는 사화주를 사불주(沙弗州)라고도 표기하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벌주의 변동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법흥왕 12년 2월조 참조. 註 002 흰 참새를 바쳤다: 『남제서(南齊書)』 권18 지(志)10 상서(祥瑞)조에 백작(白雀: 흰 참새)이 상서로운 새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부여의 기원 // [夫餘 : 여기서의 夫餘는 北夫餘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北夫餘는 韓國史에서 古朝鮮 다음으로 등장하는 국가로 中國文獻에는 夫餘로, 國內文獻에는 扶餘로 표기되고 있다. ① 夫餘란 명칭은 (神明)에서 유래하여 開發->滋蔓->平野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로 변하였다는 說과(崔南善,『兒時朝鮮』p.158), 『資治通鑑』에 나오는 ‘初夫餘居于鹿山’의 鹿山과 만주어에서 사슴(鹿)을 Puhu, 몽고어에서 Pobgo라고 하는 것을 근거로 夫餘를 사슴의 뜻이라고 하는 說이 있는데(白鳥庫吉,「濊貊民族の由來を述べて, 夫餘高句麗及び百濟の起源に及ぶ」p.516), ‘벌’에서 유래되었다는 說이 유력하다. 현재로서는 그 어원의 정확한 추정은 어려우나 平野를 의미하는 夫里 등과 同音同義語로 夫餘의 국가적 위치와 관련된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李丙燾,「夫餘考」p.226)『山海經』의 ‘有胡不與之國’과 관련하여 濊의 漢音 ‘후이’에서 夫餘의 명칭이 기원했다는 說도 있으나(리지린,『고조선연구』), 이는 아직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② 夫餘는 일찍부터 中國文獻에 등장하는데, 前記한『山海經』의 기사를 제외하더라도 伏生의『尙書大典』에는 ‘武王克商 海東諸夷夫餘之屬 皆通道焉’ 이라 하고,『史記』「貨殖傳」에는 ‘夫燕 …… 北隣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眞番之利’ 라 하였으며,『漢書』「地理志」에도 ‘北隙烏丸·夫餘 東賈眞番之利’ 라는 기사가 보인다. 따라서 夫餘는 이미 先秦時代부터 古朝鮮과 더불어 중국에 알려질 정도의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늦어도 1세기 초의 後漢代에는 王號를 쓰는 연맹 왕국으로 성장하였다고 보인다. (李基白·李基東,『韓國史講座』p.77) ③ 이와 같은 夫餘는 貊族이 古朝鮮 즉, 濊人의 나라에 건국한 국가란 說과(리지린, 앞의 책) 濊의 일부가 貊에 흡수되어 만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濊貊族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說이 있다. (李玉,『高句麗民族形成과 社會』) ≪參考文獻≫ 『山海經』第17「大荒北經」 『史記』卷129, 「貨殖列傳」69. 『漢書』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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