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소스 기억나는거 대충 메모
힉소스 기억나는거 대충 메모
힉소스
원어는 헤카 카세트
외국의 통치자란 뜻
이집트가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양치기 족장들에게 붙인
칭호.
'헤카 카세트(힉소스)' 표기는 베니하산 고분 벽화에서 확인됨
베니하산 고분 벽화는 기원전 1900년경 이집트 12왕조 시기에
제작
기원전 1876년 야곱이 이집트로 와서 '람세스'란 땅에
정착함
이 때는 이집트 12왕조 말기이고
당시에 람세스 땅은 '아바리스(텔엘다바)'라고 불렸고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셈족들이 파라오의 후원 하에
아바리스에 정착해서 양치기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자치구로 발전해갔음이 확인됨
당시 파라오는 세누스레트 2세,3세,아메넴하트 3세인데
이 시기 동안 파라오는 팔레스타인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원정을 가고, 자국 내에서는 지방호족들을 탄압하고 중앙집권 제도를 밀어붙임.
창세기 요셉은 파라오의 총리가 되서 전권을 행사하여
7년간의 기근 동안 쇠약해진 지방 호족들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행사해서 지방호족들을 약화시키고
파라오를 전국토의 주인이 되게함 (신돈 비슷함)
요셉의 출세가 너무 동화 판타지같지만
그런 경우가 없는건 아님(신돈)
그리고 셈족 출신 요셉의 출세를 가능하게하는
후원 세력(아바리스에 정착을 하여 장로 세력으로 성장하며 파라오를 후원하는 셈족 족장들이나 셈족 상인들)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을수도있음(기근이나 반역 등 사회적 혼란을 점술,해몽 등 신비의 도술로 해쳐나가려고
하는 분위기의 팽배)
아바리스의 셈족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감.
이집트 12왕조 말과 13왕조 초기인 기원전 1800년경에
형성된 아바리스의 요셉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과 궁궐 수준의 대저택
빨간 버섯 모양 헤어스타일에 노란 피부에 채색옷을 입고
부메랑 모양 홀을 들고있는 셈족 출신 총리(?)의 석상과
석상이 안치된 사당
그리고 주변의 12개 무덤들
그리고 궁궐 수준의 대저택은 요셉과 12형제를 연상시킴
마치 한나라 환관의 양아들에 불과했던 조조가
한나라 승상에서 독립국인 '위'나라의 '왕'으로 되는
그런 성장 과정과 비슷한 느낌?
창세기의 요셉은 그 이름이 '증가'란 뜻임
후대에 붙인 이름같다
요셉 이야기는 이집트의 시누헤 이야기와 바타 이야기랑
엄청 매우 비슷함
둘 중 뭐가 원조인진 몰라도
성경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이야기는
고대 한국으로 치면 해모수 해부루 금와 주몽 온조 느낌 남
단순한 동화나 뻥이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의 중요한 비밀의
역사가 담겨져있는 그런 느낌이다
이집트 13왕조 시대 진입 후 이집트는 분열되고 쪼개져서
수십명의 파라오들이 할거하기 시작함
이 때 셈족 자치구인 아바리스는 여전히 셈족들이 떵떵거리며
살았고 파라오와 가신 관계를 유지하다가
기원전 1650년경 아바리스의 셈족 우두머리는 가신 관계를
깨고 파라오에 즉위하여 '헤카 카세트(힉소스)'를 공식 왕호로 채택함
그후 이집트를 정복함
나머지 이집트 원주민들은 남쪽으로 도망가서 자기들끼리
따로 왕조를 세움
힉소스의 통치는 100년간 계속됨
그러다가 기원전 1550년경 힉소스는 남부 이집트 파라오 아흐모세 1세의 정벌 한번에 패망해 멸망하고 팔레스타인의 멀티로 도망가는데
아흐모세가 추격해서 그 멀티도 정복함
아흐모세 1세 때 아흐모세측 기록을 보면
힉소스 수도 아바리스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 나옴
여리고 멸망은 기원전 1550년경임
그러면 거기서부터 40년 광야 생활 거꾸로 돌리면
기원전 1590년경이 출애굽 시점이 됨
출애굽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힉소스 파라오와 그의 가문
그리고 하층민(=하비루=히브리)간의 갈등
그리고 힉소스 백성들의 다양한 종족 구성 그로 인한
사회적 통합의 힘듬
그리고 남부 이집트 원주민 왕조의 지속적인 힉소스에 대한
침공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꼬이다가 지중해 테라 화산 폭발과
그로 인한 쓰나미 그리고 전염병의 창궐과 그로 인한 후유증들
이 담겨져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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